권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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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9월 26, 1995

창조주는 당신에게 당신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처리할 권한을 주었다. 이 권한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 의사 결정과 그 결정의 결과에까지 미친다.

창조주는 당신이 당신 배의 선장이 될 수 있도록 권능을 부여했다. 이 책임의 범위 안에서 당신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고 지혜롭게 자기 생각과 일상사를 관리하는 법을 배우도록 독려를 받는다.

당신 내면의 신성한 인도가 없다면 당신 혼자 힘으로는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창조주는 알았다. 그래서 창조주는 당신에게 앎을 주었다. 이 앎은 당신 내면에 있는 큰 마음, 당신 이성의 영역 너머에 있는 마음이며, 이해할 수는 없지만 경험할 수는 있는 마음이다. 앎은 모든 하사품 가운데 가장 큰 것이며, 당신 권한의 근원이다.

창조주는 당신에게 이 힘을 주었다. 그리하여 당신이 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도록 하였으며, 당신 내면에서 결합하는 길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 결합할 수 있는 수단을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세상에서의 당신 사명을 깨닫고 실현하려면, 당신의 힘과 권한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창조주는 알았다. 만약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창조주에게 의존한다면, 당신은 결코 이 권한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지 못할 것이며, 삶에서 진정한 능력이나 진정한 역할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앎길을 배우고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초기에, 당신은 이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 권한은 보통 결정권을 통해 경험할 수 있으며, 당신은 이 결정권을 행사하도록 위임받았고 사용하도록 격려받는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멈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없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내린 결정으로 인해 큰 어려움에 빠졌고, 상당한 시련을 겪었으므로, 자신의 결정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과거 수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또 자신을 속이고 남들이 자신을 속이도록 내버려둔 태도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다시 시작해야 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책임지도록 격려받는다.

앎길에 다가와 앎길과 지혜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나는 이 자료를 선택하여 읽고 이해해 보겠다. 나는 지혜를 지닌 이 위대한 책들이 나에게 제공하는 것을 이해하고 경험하려고 시도해 보겠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아주 작은 수준의 권한을 행사하는 행동이다.

심지어 앎길에 들어서기 전부터, 어떤 이들은 이 권한을 행사해야 했다. 진실해지기로 새롭게 결단하고, 정직해지기로 새롭게 결단하며, 자신을 해치지 않는 길, 위험·갈등·시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길을 선택하기로 새롭게 결단하는 데서 이 권한을 행사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당신 성장의 모든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당신은 앎길에 들어서기 전에도 자신을 위해 이 권한을 행사했다. 어쩌면 당신은 여전히 온갖 무모함과 열광적으로 하는 일들에서 개인적 마음의 뜻을 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앎길에 들어서기 위해 당신은 이미 진정한 권한을 행사했고, 당신이 자신에게 부여했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여한 거짓 권한을 따르지 않기로 선택했다.

삶의 큰 목적과 사명은 오직 알 수만 있다. 당신을 세상에 파견한 이들도 오직 알 수만 있다. 창조주의 본질과 실재는 오직 알 수만 있다. 당신의 진정한 본성과 현실은 오직 알 수만 있다. 그래서 당신은 앎길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삶에서 중요한 모든 질문에 대한 답, 삶에서 진짜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직 앎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오직 알 수만 있고, 경험할 수만 있다.

앎은 단계적으로 당신을 이 경험으로 이끌 것이며, 당신에게 부여된 큰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당신의 힘, 자신감, 자존감을 되찾게 할 것이다.

당신은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으로는 창조주에게 돌아갈 수 없으며, 영적 복지를 바라는 상태로도 창조주에게 돌아갈 수 없다. 당신은 강해져야 하고, 내면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앎에 대한 확신을 되찾아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과 야심을 통해 자기 삶을 안내하고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부여한 거짓 권한에서 벗어난다. 여기서 당신은 자신의 권한을 내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온갖 거짓 권한에서 벗어난다.

당신은 자신의 권한을 내주기보다는 앎에 다가간다. 당신은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다가간다.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계단들을 밟는다. 당신은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과거에서 벗어난다. 당신은 앎길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에 대한 답임을 알기에 앎길에 다가간다.

앎길이 바로 그 길이다. 유일한 답은 그 길을 받아들이는 것, 앎으로 가는 계단을 따르는 것이다. 다른 어떤 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신의 진정한 목적과 진정한 본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계단들을 밟아야 한다. 그것만이 답이 되는 유일한 답이다. 그리고 이 계단을 밟으려면, 당신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이 개념을 실행에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것이고 어떤 실망도 피할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어떤 측면도 내려놓고 싶지 않을 것이며, 어떤 욕망도 외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충동의 노예가 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두려움·야심 또는 다른 사람들의 욕망·두려움·야심에 자신의 권한을 내어주고 그 권한을 받은 대상을 따르는 추종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당신의 권한은 앎에서 나오며, 오직 앎에서만 나온다. 앎에서 나온 것이야말로 당신이 지닌 유일한 진짜 권한이고, 유일한 진짜 힘이다. 당신 앎에는 당신의 진정한 능력을 회복하고, 삶에서의 사명을 인지하고,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필요한 기억과 수단이 담겨 있다. 다른 어떤 것도 당신을 위해 이 기억과 수단을 담을 수 없다.

당신의 욕망으로는 당신을 위해 이 기억과 수단을 담을 수 없다. 당신의 두려움으로도, 당신의 야심으로도 이것들을 담을 수 없다. 그 욕망과 두려움과 야심은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당신의 힘을 권한 있는 외부 다른 것들에 내주도록 이끌고, 그것들에 얽매이도록 이끈다. 그 과정에서 당신 자신을 위해 그 욕망과 야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일단 앎길에 들어선 사람이면,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을 움직이는 큰 목적이 있음을 깨달았으며, 단순히 자신의 생각·감정·신념의 노예나 하인이 되는 쉬운 길을 택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신념이 자기 삶에 초래한 큰 피해와 재앙을 보았고, 자신의 일생과 삶의 에너지를 엄청나게 낭비하고 오용했다는 것을 보았다.

이제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내주는 이 단순한 것들 너머에 더 큰 어떤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 사람에게는 큰 운명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권한을 행사하기 시작하며, 진실을 향해 가는 길은 그 사람을 앎길로 이끌 것이다.

당신 내면에는 큰 권한이 있다. 당신은 창조주나 천사의 무리에게 호소할 필요가 없으며, 다세계 큰 공동체에 있는 신비한 힘들에게 호소할 필요도 없다. 당신은 본연의 자신에게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세상에 사는 경험을 통해 조건화되고 창안된 자아가 아닌, 고향에서 당신과 함께 세상에 온 큰 자아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 큰 자아에는 당신의 권한이 담겨 있다. 바로 이곳에 당신의 힘과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렇다면 무엇이 나의 진짜 권한이고, 무엇이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나에게는 매우 강한 감정이 있고, 매우 강한 강박적인 욕구가 있다. 나는 쫓기듯 이것저것을 하고 있으며, 다른 것들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알려주나니 당신의 진정한 권한은 아주 조용하고 일관되게 말할 것이다. 이 권한은 논쟁하지 않고, 토론하지도 않으며, 선택지를 고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거래를 하지도 않으며, 그저 이익이 되거나 유리해 보이는 것만 추구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권한을 거스를 때, 당신은 내면에서 큰 불편함을 느낄 것이며, 자신의 아주 깊은 곳에서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이것은 앎이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이 앎을 거스르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것은 표면 마음에서 마음을 사로잡는 두려움이나 불안과는 다르다. 우리는 매우 깊이 스며 있는 어떤 것을 말하고 있다. 당신은 앎을 거스르는 이 경험을 해본 적이 있으며, 여러 번 이 경험을 했다. 어쩌면 예전에는 그 순간에 당신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 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다.

당신이 앎을 발견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앎을 거스름으로써 당신 마음과 몸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이질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때 앎은 당신을 비판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물러나 침묵할 뿐이다. 앎의 수준에서는 비난이 없다. 만약 앎의 권고나 영향을 느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면, 앎은 그저 당신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복수하는 신, 분노하는 창조주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앎은 창조주의 뜻과 지성을 나타내고, 창조주가 당신 내면과 삶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한을 이질적인 관념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힘들에 내주었으므로, 자신이 받는 것이나 겪는 고통은 모두 창조주나 다른 사람, 정부, 어떤 신성한 힘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배를 관리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 갑판을 청소해야 하고, 돛을 펼쳐야 하며, 장비를 수리해야 한다. 그리고 배를 조종해야 한다. 자신의 운송 수단인 마음과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그들의 책임은 끝난다. 왜냐하면 여행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도 없고, 자신의 기원에 대한 책임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배에 실린 특별한 화물, 즉 진정한 공헌을 만들어 낼 책임도 없다.

여기서 명확하게 생각하라. 자신의 배를 지혜와 권한으로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지 깨달으라. 이것은 세상에서 제대로 해낸 사람이 거의 없는 도전이다. 자신의 여행을 끝마칠 수 있도록 배의 선장으로서 자신의 배를 유지하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만 해낸 일이다.

그러나 이 여행은 해낼 수 있으며, 해내도록 당신에게 제공된 것이다. 당신은 그 배에 올라타야 하며, 돛을 올려야 한다.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큰 힘을 통해 창조주가 인도하겠지만, 당신은 배가 항해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당신은 마침내 항구를 떠나 바다로 나가야 한다. 당신은 배를 관리해야 하고, 자신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끊임없이 당신 권한을 행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 권한의 근원을 존중한다.

이것이 창조주를 숭배하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엎드리거나, 끝없이 간청하거나, 소원 목록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당신 배가 큰 여행을 하여 특별 화물을 전하는 것, 즉 세상에서 큰 공헌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자신의 실재와 창조주의 실재를 존중하고, 이곳에 머무는 모든 이의 실재를 존중한다.

바로 지금 창조주의 천사이자 당신의 참된 교사인 불가시 존재들은 당신의 배를 항해할 수 있게 준비시키고자 한다. 어쩌면 당신은 자신이 이미 항해 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여전히 항구 주변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아직 먼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누군가 혹은 어떤 것이 당신을 인도한다고 믿거나 바라면서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과는 다른 여행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것저것을 실험해 보거나, 관계를 맺고 끊기를 반복하거나, 온갖 영적 가르침을 시도해 보거나, 영성이나 심리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것과는 다른 여행이다.

그것은 먼바다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먼바다로 나가려면 당신 배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당신의 주된 생각들을 상징하는 선원들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당신의 권한을 인정하고 섬겨야 한다. 당신의 능력인 돛은 펼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당신은 모든 보급품을 갖추어야 하고, 선원들의 질서도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무작정 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다. 의지나 소망이나 충동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며, 당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모든 것이 당신을 위해 알아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면서 떠나는 여행도 아니다. 왜냐하면 만약 복지 의존 상태에 있거나 신과 당신의 관계와 관련해서 의존적 사고방식이 있다면, 당신은 이 여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은 당신이 사명을 완수하고, 삶에서 큰 여행을 하도록 당신에게 맡긴다. 당신은 창조주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모든 기회를 주고, 모든 문제나 도전에서 당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반대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당신은 “세상에! 이것은 엄청난 책임이야! 내가 이것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이것을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앎이 당신 내면에 있고, 당신은 목적이 있어 세상에 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큰 계획의 특정 측면들을 완수하기 위해 특정인들과 함께하려고 세상에 왔다. 당신은 아직 이것들을 알지 못한다.

큰 계획의 이러한 특정 측면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이것들의 실재를 담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와 관련된 특정인들을 찾아야 하고, 독특한 활동들에 참여해야 한다. 당신은 생각이라는 항구, 사회적 신념과 편의라는 항구를 벗어나 먼바다로 과감히 나가야 한다. 다른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배를 방치하거나, 자신의 권한이라는 진정한 기반 없이 삶과 타협하려고 애쓰며 뒤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당신은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뒤에 남은 다른 모든 사람을 돌아보며 돛을 올린다. 개인적 안전과 개인적 믿음이라는 항구를 떠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그들은 모두 그곳에 묶여 있다. 그들에게는 배가 있지만 항해할 수 없고, 선원이 있지만 선원들은 승선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돛이 있지만 수리하여 쓸 수도 없고, 보급품이 있지만 배에 실을 수도 없다.

그들은 혼란에 빠져 있다.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 당신 자신도 한때 그곳에서 살았다. 이제 당신은 당신 배의 선장이 되고, 배를 재건하고 준비하며, 필요한 보급품과 선원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과 용기가 필요한지 배우고 있다.

권한을 행사해 봄으로써, 당신은 그리할 수 없거나 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자비심을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 일이 큰 도전임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큰 도전이 당신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당신이 자신의 힘을 찾고, 앎을 따르는 사람이 되며, 삶에서 큰 사명과 운명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도전이 필요하다.

당신은 쉬운 길, 편안한 길을 택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대중적인 생각이나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관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당신은 하루 종일 자신에게 듣기 좋은 것만 말하고, 자신을 안심시키며, 잘못을 변명하고, 어려움과 불쾌함을 회피하며 빈둥거려서는 안 된다.

항구에 남은 사람은 모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그 일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선장이 아니라 선원이 되고 싶어 하며,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되고 많은 것을 갖게 되기를 기대하며, 대가 없이 어떤 것을 얻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의미·방향·운명이 계시되기를 바라지만, 그것들이 명백해지고 자명해지는 여행을 하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진정한 권한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비심을 가지라. 그들을 비난하지 말라. 이 중요하고, 필수적인 권한을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삶에 활력을 주는지 알 때, 당신은 이해할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이들도 이 권한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먼저 당신 자신이 이 권한을 되찾아야 하며, 당신 배가 항구를 떠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충분히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세상에! 나 혼자서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없어. 나에겐 너무 벅찬 일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혼자서 이 여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불가시 존재들이 당신과 함께할 것이고, 당신 배는 다른 배들과 합류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자신의 방향을 찾을 것이다. 만약 항구에 머물며 그 여행을 이해하려 하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그 여행이 어떠할지 추측하려 한다면, 당신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며,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 그 여행이 무엇인지 알 것이고, 그래야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것이며, 그래야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알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기꺼이 초보자가 되어야 한다. 당신은 초보자이다. 자신이 무엇을 믿든, 무엇을 해냈거나 이루었다고 생각하든 상관없이, 앎길에서는 누구나 초보자이다. 모든 사람은 앎의 초보 학생이다. 왜냐하면 시작하려면 반드시 초보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이미 안다고 생각하고,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과 가정들에 그토록 큰 신뢰를 둔다면, 당신은 결코 항구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배에 타지도 못할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여행을 떠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앎길을 공부하면서 사람들은 모든 단계에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격려받는다. 이 권한은 자신의 의지나 소망이나 야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앎 그 자체에서 나온다.

지혜의 책들을 읽는 것은 당신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다. 설령 그 책들이 당신에게 어떤 것을 줄 것으로 생각하더라도, 당신은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으니 이 권한을 행사할 것이다. 설령 그 책들이 당신의 야심을 채워주고, 부·풍요·사랑·관계·행복을 줄 것으로 생각하더라도, 또 당신에게 의존적 사고방식이 있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당신이 여행을 하고, 바다에 나가 있을 때, 반드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항구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이런 착각을 한다. 그들은 “누구나 자기 운명을 찾을 거야. 우리 모두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이면서도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올바른 방향이 있어야 한다. 지혜의 책을 읽을 때, 당신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앎으로 가는 계단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면, 설령 이 공부를 통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며, 신의 공짜 선물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앎은 당신의 동기가 아직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행복해지려면 모든 야심을 실현해야 한다는 믿음에 당신이 여전히 얽매여 있고 짓눌려 있음을 앎은 안다. 앎은 당신이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음을 알지만, 그 짐을 벗겨줄 것이고, 당신을 해방할 것이다. 앎은 당신을 비참한 하인에서 배의 선장으로 이끌 것이며, 당신에게 어떤 오만함도 불어넣지 않고 이렇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배의 선장이 되었을 때, 당신은 자신이 앎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당신은 경건해지고 겸손해지지만, 동시에 강해질 것이다.

이것을 기반으로, 창조주는 당신에게 삶의 사명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준비되기 전에는 이 사명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당신을 준비시키기 위해, 창조주는 앎으로 가는 계단과 지혜의 책들을 주었다.

당신이 앎으로 가는 계단에서 밟는 모든 계단, 당신이 하는 모든 연습은 당신의 권한을 행사하는 행위이다. 이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당신은 자신의 힘을 깨달을 것이고, 그 힘의 원천을 깨달을 것이며, 단순히 자신의 소망이나 야심을 실현하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큰 어떤 것, 심지어 세상보다도 더 큰 어떤 것을 존중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자유롭고, 다른 사람들의 바람이나 의지, 심지어 정부의 책략에도 지배받거나 조종당하지 않으며, 다세계 큰 공동체에 있는 누구에게도 지배받거나 조종당하지 않는다.

그러한 권한이 당신 내면에 있다. 그러나 그 권한을 실감하려면, 반드시 행사해야 한다. 단순히 그 권한을 믿기만 하거나, 그 권한에 대한 거창한 가정을 하거나, 그 권한이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해주기를 기대하고, 무기력한 어린아이처럼 삶을 방황할 수 있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자기 일들을 책임져야 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당신은 삶의 네 기둥, 즉 관계의 기둥, 일의 기둥, 건강의 기둥, 영적 성장의 기둥을 마주하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당신 책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먼바다를 항해하려면, 당신을 지지하고 당신의 큰 사명과 조화를 이루는 관계들이 있어야 한다. 당신의 일은 학생이 되는 능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곳에서 내리는 결정에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이고 진정한 방식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앎길에서 준비해야 한다.

이 기둥들을 세우는 일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 일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당신이 각 계단을 밟을 때마다 이 권한을 행사한다. 그리고 당신이 이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이 권한은 조금씩 더 강해지고, 그 실재와 본질이 조금씩 더 드러난다.

여기서 당신의 능력과 깊은 성향이 당신에게 드러나며, 당신은 이것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운다. 여기서 당신은 그릇된 가정을 하거나, 조급해하며 앞서 나가려 하거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자신이 선호하는 생각으로 채우려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로운 일인지 인지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보다는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참을성을 배운다. 당신은 자신의 이해가 불완전하므로 불완전한 상태로 두는 법을 배운다.

여기서 당신은 미지의 것과 친구가 되어 삶의 신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와는 반대로 이전에는 불확실성을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규정되어야 했고, 정리되어야 했다. 당신은 모든 빈 공간을 틀에 박힌 생각과 편리한 믿음으로 채웠다. 당신의 확실성과 정체성은 바로 이런 그릇된 이해에 기반을 두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당신을 저버렸으며,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 당신은 큰 권한, 즉 당신 내면에 살며 오랫동안 당신이 도달하기만을 기다린 큰 정체성으로 눈을 돌린다.

당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따르며, 당신 연습을 활용한다. 당신은 삶의 네 기둥에서 일하는 법을 배운다. 결정을 내릴 때 앎을 적용하고, 다른 사람들 내면에 있는 앎에 호소하며, 앎을 구현할 수 있는 강한 관계를 구축하고, 앎을 부정하거나 지지할 수 없는 이들에게서 물러나는 법을 배운다.

여기서 당신은 자신의 배가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여행에서 당신은 사명 자체에 필수적이고 필요한 것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데려갈 수 없으며,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없다. 또한 당신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없으며, 당신의 모든 기억을 가져갈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 배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할뿐더러, 그것들은 당신의 사명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단지 자신과 여행할 수 있는 그러한 생각, 기억, 태도, 믿음, 소유물, 활동, 관계 등만 가져갈 수 있다.

내가 말하는 지금, 당신은 자신의 권한을 얼마나 많이 행사해야 하는지, 또 어느 정도로 이 권한을 인지해야 하고 마음속에 있는 다른 충동과 구별해 내야 하는지 알기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당신은 자기 내면에 확실성의 참된 기반, 삶에 대한 헌신을 다져야 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당신은 어떤 것들이 떨어져 나가도록 두어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근본적이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아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이 권한은 당신에게 당신의 힘과 능력을 회복시켜 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의 진정한 역량이 드러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성장과 사명 완수에 필수적인 관계들을 당신에게 데려다줄 것이다. 이 권한은 당신을 위해 길을 열어줄 것이고, 당신을 강하게 할 것이며, 당신에게 당신의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 배의 선원인 당신의 생각들은 당신에게 복종할 것이다. 당신의 생각은 당신을 따를 것이고, 당신을 섬길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끌 수 있는 권한이 있고, 힘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지휘하도록 당신에게 제공된 당신의 생각과 활동과 일을 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앎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달리 길이 없다. 당신은 앎을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더 큰 도전이자 성취인지 알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당신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의존적 사고방식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고, 수많은 가정, 그중 상당수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가정들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당신은 마음을 열고, 마음을 비워야 할 것이다. 당신은 삶을 매우 깨끗하고 매우 효율적이고 매우 의식적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 아닌가? 당신은 이것보다 못한 것에 안주할 수 있는가? 당신은 항구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어떤 성취감을 찾을 수 있는가? 당신은 이 항구에 이미 충분히 오래 머물렀고, 항구 주변을 배회하였다. 당신의 배는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당신은 그곳에서 주변의 혼란을 볼 수 있다.

당신은 밖을 바라보며 먼바다가 당신을 기다리며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자기 내면에 있는 이 부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을 느끼며,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를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고 가야 할 곳들이 있으며, 당신은 반드시 그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쾌락이나 안락함이나 사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을 이곳에 파견한 이들이 당신을 부르고 있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그 사명을 찾아 완수할 힘과 권한을 얻도록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권한에 다가가라.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감과 용기를 가지고, 또 그 권한의 실재를 발견하고 그 권한의 힘을 발휘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다가가라.

이 권한이 무엇인지, 또 이 권한을 어떻게 지혜롭게 표현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초보자로서 다가가라.

당신의 기존 생각과 가정과 규정은 이제 당신에게 필요하지 않으므로 뒤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다가가라. 왜냐하면 당신은 삶에서 진정한 권한을 찾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 바로 이 권한을 활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진정한 온전함을 찾아야 하고, 고향에서 가져온 선물을 되찾아 세상에 전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